구병모 파과가 말하는 생의 윤리: 노년의 살인자, 인간성을 증명하다

살인청부업자가 주인공인 소설은 많지만, 그가 65세의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구병모의 《파과》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살아남는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차이를 묻는 철학적 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노년’과 ‘폭력’을 연결함으로써, 우리가 인간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습니다.

1. 늙은 여성 킬러, 존재 자체로 사회의 균열을 드러내다

《파과》의 주인공 조각은 65세의 여성 청부업자입니다. 흔히 젊고 냉혹한 남성으로 그려지는 직업이지만, 구병모 작가의 시선은 다릅니다.

그는 노년의 몸을 지닌 여성의 시선으로, 인간이 생존을 위해 감내해야 했던 폭력과 고독을 차분히 응시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살인보다 ‘살아 있음’의 의미를 더 깊이 묻는 서사로 읽힙니다.

주인공 조각은 45년 동안 조직에 몸담아 온 노년의 킬러입니다. 그녀는 여전히 과거의 명성을 유지하려 하지만, 세월은 이미 몸을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손끝의 감각은 둔해지고, 기억은 조금씩 흩어집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청부업자입니다.

이 모습은 단순히 ‘은퇴를 거부한 노인’의 완고함이 아니라, 존재의 부정에 맞서는 마지막 저항입니다.

우리 사회는 노년 여성에게 대체로 돌봄과 소멸의 역할만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조각은 그 역할을 완전히 거부합니다.

그녀는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의 생사를 결정짓는 주체로 등장합니다.

조각 인물 분석의 핵심은 그녀의 삶은 이미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났지만, 그 경계의 자리에서 오히려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 — 살아 있음의 증명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구병모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노년 이후의 삶에도 여전히 서사가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조각은 노년, 여성, 폭력이라는 세 겹의 낙인을 동시에 지닌 채, 세상이 외면한 이들의 초상을 대표합니다.

그녀의 폭력은 잔혹하지만, 그 폭력조차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언어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살인의 행위가 아니라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구병모 작가는 그 잔혹한 순간조차 살아 있음의 마지막 증거로 바라봅니다.

2. “파과(破果)” — 부서짐 속에서만 피어나는 인간성

‘파과’라는 제목은 문자 그대로 ‘깨진 열매’를 뜻합니다. 언뜻 보기엔 실패와 파멸의 상징 같지만, 구병모 작가는 그 깨짐 속에서 오히려 인간다움의 마지막 빛을 길어 올립니다.

조각의 인생은 여러 번 부서져 왔습니다. 스승의 죽음, 동료의 배신, 조직의 냉정한 계산,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의 무게가 그녀를 수없이 금 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부서짐을 단순한 비극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부서짐은 곧 살아 있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조각은 노화로 인해 기억을 잃고, 몸이 느려지며, 감각이 흐릿해지는 자신을 자각합니다. 하지만 그 약함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윤리가 피어납니다.

그녀가 마지막 의뢰를 완수하려는 이유는 단순히 생계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직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 다시 말해 사회가 버린 인간이 여전히 인간으로 남을 수 있다는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이 지점에서 《파과》는 도덕적 판단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살인을 반복한 인간도 여전히 인간일 수 있을까?”

조각의 대답은 명확하지 않지만, 그 모호함 속에 진실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녀의 폭력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행위이자, 스스로가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그래서 ‘파과’는 단순히 깨짐의 은유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균열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피어나는 생의 윤리를 상징합니다.

3. 사랑, 구원의 또 다른 이름

《파과》의 세계는 피와 죽음으로 얼룩져 있지만, 그 안에는 놀랍게도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다정하거나 부드러운 사랑이 아닙니다. 구병모 작가의 사랑은 냉정하고, 때로는 폭력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조각이 사랑했던 이들은 대부분 그녀의 생과 직결된 인물들입니다. 그녀에게 살인을 가르친 스승 류, 상처를 치료해 준 의사 강박사, 그리고 자신이 직접 죽여야 했던 과거의 그림자들.

이 관계들은 모두 생존의 기억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조각은 타인을 향한 따뜻한 감정보다, 그들의 부재를 통해 자기 존재를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연민과 죄의식이 뒤섞인 감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병모 작가는 그 차가운 세계 안에서도 ‘연민’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을 보여줍니다.

특히 강박사와의 관계는 조각에게 유일한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를 향한 조각의 감정은 단순한 사랑이라기보다, “누군가를 죽이는 대신 살리고 싶다”는 충동에 가깝습니다.

그 순간 조각은 살인자가 아니라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폭력의 세계 속에서도 타인을 살리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의 마지막 불씨입니다.

이 장면은 작품 전체의 핵심을 압축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누군가를 다치게 하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도 덜 잔혹해지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파과》의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감상적인 구원이 아니라, 파멸 속에서 피어난 인간성의 윤리입니다.

저자는 그 부서진 사랑을 통해 조각을 다시 인간으로 복원하며, 독자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잔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4. 여성의 몸, 기억, 존엄의 재구성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노년의 여성을 피해자나 치유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능동적 주체로 다시 세우기 때문입니다.

조각의 몸은 분명 노쇠합니다. 손끝의 감각이 둔해지고, 몸의 속도는 더딥니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여전히 ‘작동하는 몸’이자, 스스로를 방어하고 선택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녀가 손에 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입니다. 그것은 살인을 위한 도구이기보다,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조각은 사회가 정한 선과 악의 경계를 벗어나, 자신만의 윤리로 마지막 생을 버텨냅니다.

구병모 작가는 이 인물을 통해 “노년 이후에도 선택할 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이 듦이 곧 무력함을 의미하지 않듯, 인간의 존엄 역시 젊음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노년의 몸을 약함이나 결핍으로 그리지 않고, 시간의 흔적을 품은 또 하나의 힘으로 그려냅니다. 그 힘은 생의 끝을 향해 가면서도, 여전히 살아 있으려는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더불어 《파과》는 노년 여성 서사를 통해 기억의 윤리를 탐구합니다. 조각은 과거의 살인과 상처를 잊고 싶어 하지만, 잊지 못합니다.

그 기억들은 그녀를 괴롭히지만, 동시에 살아 있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억은 그녀의 죄의식이자 인간성의 마지막 흔적입니다.

이렇듯 구병모는 노년의 신체와 기억, 그리고 존엄을 다시 엮어내며, 살아 있음의 윤리를 새롭게 제시합니다.

조각은 더 이상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질문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주체로 재탄생합니다.

5. ‘조각’은 우리 모두의 미래일지도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것은 잔혹한 장면이 아니라 조각이라는 이름의 삶입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일을 하면서도, 가장 뜨거운 인간적인 고뇌를 품은 인물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해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덜 잔혹해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파과》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조각처럼 늙어가고,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잊혀질 것입니다.

그때 과연,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조각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노년 여성의 비극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맞이할 미래의 초상으로 읽힙니다.

작품 속 조각은 끊임없이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려 하지만, 결국 그녀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그 쓸모가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의지와 감정입니다.

그녀는 살인을 통해 생을 연장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로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려 합니다.

그 아이러니가 바로 이 작품의 윤리적 무게이자, 독자가 마주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파과》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부서지고 늙어가는 자신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까?”

6. ‘늙은 킬러’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

《파과》는 노년 여성 서사의 외연을 넓힌 작품이자, 인간의 존엄에 대한 철학적 선언문입니다.

살인청부업이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켜내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단순한 범죄소설도, 단순한 페미니즘 서사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부서진 삶도 여전히 완전할 수 있다”는 문학적 확신에 가깝습니다.

조각은 이미 여러 번 깨졌지만, 그 부서짐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녀의 존재는 잔혹하고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이 인간다움의 본질임을 작가는 보여줍니다.

구병모 작가의 문장은 차갑지만 단단하고, 잔혹하지만 묘하게 따뜻합니다. 그 세계 안에서 독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의지를 마주하게 됩니다.

《파과》는 노년을 ‘소멸의 시기’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삶의 의미가 가장 깊어지는 시기로 바라봅니다. 그 시선이야말로 구병모 소설의 가장 큰 성취이며,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위로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언제나 젊음을 찬양하지만, 작가는 그 반대편에서 말합니다.

“늙어감은 사라짐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완성이다.”

그리하여 조각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녀의 부서진 삶은 우리 안의 균열과 맞닿아 있고, 그 균열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파과》는 결국 노년의 킬러가 아닌, 모든 인간의 ‘파과’를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부서지고 깨져도, 여전히 살아 있으려는 우리 모두의 서사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직접 촬영한 도서 이미지입니다. (구병모, 《파과》,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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