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연의 《홍학의 자리》는 불륜과 살인을 다룬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도덕의 붕괴’라는 거대한 주제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순간, 사랑은 폭력이 되고 진실은 은폐됩니다.
이 글에서는 《홍학의 자리》가 드러낸 사회적 위선과 심리적 균열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온 인간의 본성과 윤리의 경계를 짚어봅니다.
1. 불륜이 아니라, ‘도덕이 붕괴된 사회의 축도’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는 표면적으로는 교사와 제자의 금지된 관계, 그리고 살인사건이라는 스릴러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훨씬 더 거대한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도덕이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
주인공 김준후는 단순한 불륜남이 아닙니다. 그는 책임을 가장한 자기합리화의 화신입니다.
그가 채다현의 시신을 유기하는 이유는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즉, 그는 사랑조차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소비합니다.
이 지점에서 《홍학의 자리》는 단순한 심리 스릴러를 넘어, 한국 사회의 도덕적 균열을 상징하는 심리극으로 확장됩니다.
정해연 작가는 한 개인의 범죄를 통해 체면과 위선, 명예라는 이름으로 덮여 있는 사회적 폭력을 해부하고 있습니다.
2. ‘교사와 제자’라는 관계의 권력 구조
이 작품의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단순히 ‘금지된 사랑’이 아니라, 권력의 비대칭성에 있습니다.
40대 교사와 10대 제자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사랑’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형태를 한 지배와 종속의 구조입니다.
김준후가 다현에게 느낀 것은 애정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재확인하는 쾌감입니다. 그는 나이와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다현을 “자신이 필요로 하는 존재”로 만듭니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묻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은, 왜 늘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보호하는가?”
《홍학의 자리》는 바로 그 질문을 독자의 윤리의식 위에 던집니다. 사랑이 도덕을 침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인간적인 감정이 아니라 폭력의 연장선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3. ‘홍학’이라는 상징 — 피와 순수의 교차점
제목 속 ‘홍학’은 작품 전체의 상징축을 담당합니다. 홍학은 고결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피처럼 붉은 깃털을 지닌 존재입니다. 즉, 순수와 타락,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존재입니다.
소설 속에서 다현은 바로 그 홍학의 위치에 있습니다. 순수하지만, 그 순수함 때문에 상처받고, 결국 사회의 어두운 욕망 속에서 희생됩니다.
김준후의 세계에서 다현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의 욕망을 투사한 거울이었습니다.
홍학이 ‘자리’를 잃는 순간, 즉 다현이 죽음으로 사라지는 순간, 그 사회의 윤리적 균형 또한 무너집니다.
정해연 작가는 홍학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도덕이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서사 구조
《홍학의 자리》는 서사 구조적으로도 흥미롭습니다. 첫 장면이 시체 유기로 시작하면서, 독자는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작품에 들어갑니다.
즉, ‘누가 죽였는가’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왜 죽였는가, 어떻게 숨겼는가’에 초점이 맞춰진 심리적 서스펜스입니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독자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은 거짓으로 그 위를 덮습니다.
진실이 은폐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두 얼굴이 드러나고, 그 위선의 층위를 해체하는 과정이 바로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정해연 작가는 범죄 스릴러의 형식을 빌려, ‘도덕적 회피’라는 인간의 본능을 집요하게 파헤칩니다.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5. 정의가 무너진 사회의 초상
작품의 결말에서 김준후는 살인과 은폐의 책임을 거의 지지 않습니다. 그는 기껏해야 3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그가 배신한 아내는 여전히 그를 돕습니다.
이 부조리한 결말은 독자에게 불쾌함을 남기지만, 바로 그 불쾌함이 현실의 반영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권력 있는 가해자가 얼마나 쉽게 면죄부를 받는지를 이 소설은 잔혹할 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홍학의 자리》의 세계는 픽션이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의 축소판입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가해자의 명예가 보호되는 세계.
작가는 이 모순된 구조를 통해 “진실은 늘 약자의 편에 있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비춥니다.
6. 독자가 느끼는 불쾌감, 그 자체가 메시지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감정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답답함, 분노, 그리고 허무함입니다. 그러나 이 불쾌감은 작가의 실패가 아니라, 의도된 장치입니다.
정해연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적 복수’를 기대하게 만든 뒤, 그것을 허물어뜨립니다. 그 순간 독자는 깨닫습니다. 진짜 악은 처벌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결국 《홍학의 자리》는 ‘범죄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의가 실종된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김준후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가 너무도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7. 인간의 민낯을 응시하는 용기
《홍학의 자리》는 불편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문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정해연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우리 역시 사회적 체면과 명예 앞에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추악함을 비난하는 소설이 아니라, 그 추악함을 인정하게 만드는 거울입니다.
홍학은 죽었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 자리를 직시하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홍학의 자리》가 남긴 가장 큰 가치입니다.
이미지 출처: 직접 촬영한 도서 이미지입니다. (정해연, 《홍학의 자리》, 엘릭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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